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족 충남 태안 소원면 정만호 이야기 콜록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창고 안은 캄캄했다. 그나마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서 가까이 앉은 사람을 식별할 수 있었다."엄마, 배고파요." "이것아, 이 난리 통에 배고픈 것이 대수냐!" 어린 자식에게 핀잔을 주었지만 애틋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이곳 모항초등학교(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창고에 갇힌 이틀 동안 먹은 게 하나도 없다 보니 모두가 허기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 머릿속
▶ 침몰선 마도 3호선에서 삼별초(三別抄) 명문이 나오다▶ 마도 3호선 죽간 ‘사심(事審) 김 영공(令公)’은 당시 무인 최고 실권자 김준(金俊) 마도 3호선은 마도1·2호선과 마찬가지로 화물표로 실린 목간 판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이 규명되었다. 출수 된 목간에 의하면 마도 3호선은 1265∼1268년 사이 침몰한 선박이다. 발송지는 전라남도 여수를 포함한 남부해안이며 최종 목적지는 당시 고려의 임시수도였던 강화도였는데 태안 마도에서 좌초된 선박이다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충남 태안군 박병칠 유족 박민교 이야기 뒷결박 지은 새끼줄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박병칠(당시 27세)은 죽을힘을 써가며 새끼줄을 푸는 데 집중했다. '여기 있다가는 개죽음을 면치 못하겠구나'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한밤중 곡물 창고 안은 캄캄했다. 바로 옆 사람도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 어떤 이는 코를 골았고, "어머니, 살려 주세요"라는 잠꼬대도 들려왔다.창고에는 백수십 명의 사람이 갇혀 있었는데, 온갖 악취가 진동했다. 한여름에 성인 남성 백여 명이
▶ 수중발굴 역사상 최초로 수중유물에 대한 정밀실측 침몰선으로 기록된 마도 2호선▶ 고려 무신정권 중방(重房) 도장교(都將校) 오문부(吳文富)에 가던 화물로 밝혀져▶ 2007년 태안선, 2009년 마도 1호선 발굴에 이어 2010년 수중발굴의 르네상스를 활짝 연 마도 2호선마도 2호선은 현재의 전라북도 고창 일대에서 거둬들인 곡물 등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던 중 난파된 고려시대 특산물 운반선이다. 주목되는 유물은 죽찰과 함께 출수된 매병 2점이다. 그 내용을 판독한 결과 고려시대 사람들은 매병을 ‘준(樽)’이라고 불렀다는 사실과 참기
▶ 마도 해역 출수 중국 도자기는 고려와 송·원간 교류의 흔적▶ 대부분 중국 복건성 도요지에서 만든 송나라 도자기로 판명▶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11~14세기 289년간 수많은 송·원대 상인들 고려 개경에 다녀가 태안 마도 해역에서 2009년부터 실시한 해저 탐사 과정 중 출수된 송·원대 중국 도자기는 그간 우리나라 해저발굴에서 신안선 수중발굴(1976~1984) 이후 처음 있는 성과로 볼 수 있다. 마도 해역 출수 송·원대 도자기들은 대부분 송대 중국 복건성(福建省) 민강 유역의 요지에서 제작된 것들로서 11~14세기 고려와 송(
▶ 수중발굴 사상 최초로 丁卯年(1207년), 戊辰年(1208년) 등 干支銘 목간과 죽간 출수▶ 1208년 침몰년도 판명에 따른 동반 출수 도자기 편년의 새로운 지평 마련▶ 화물표의 주인공 金純永은 고려사 기록에 1199년 將軍으로 승진한 역사적 인물 태안 마도 1호선은 1196년 등극한 고려 최충헌 무신집권의 통치기반이 공고화 되던 무렵인 1207~1208년경 全羅道의 수령현(遂寧縣, 현재의 장흥군), 죽산현(竹山縣, 현재의 해남군), 회진현(會津縣, 현재의 나주)에서 공물(貢物)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던 중 1208년 봄 태안 마
신진도에는 안흥진 수군 유적 넓게 분포, 고가(古家)에서 수군 명단 발견마도 수중유적은 동북아 국제적 중간기착지로서 송원대 유물이 다수 출수 되고 있어 여송무역(麗宋貿易)의 중간기착지로 불리워마도 육상에는 송나라 사신들이 묵었던 안흥정(安興亭) 흔적 아직도 남아 있어 태안 대섬 앞바다 수중발굴은 마도 앞바다 수중유적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태안 마도(馬島) 유적은 대섬에서 불과 3~4km 떨어진 위치로서 대섬 수중발굴 덕분에 마도 일대 정박지가 해로상 동북아의 국제적 중간기착
주꾸미 어로작업을 하던 어부의 신고로 침몰선 정체 드러나12세기 개경으로 가던 선박에서 2만여점의 도자기와 화물표 쏟아져바닷속 경주 태안 마도 앞바다 수중발굴로 이어지는 계기 마련 신안선 이후 대표적인 수중발굴은 주꾸미가 건져 올린 고려청자라고 알려진 태안 대섬 앞바다 수중발굴이다. 2007년 5월 충남 태안 대섬 앞바다에서 주꾸미를 잡아 올리던 어부 김용철씨는 주꾸미가 청자를 붙들고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선명한 비색을 띠는 청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값나가는 유물이었고 이에 김용철씨는 태안군청에 이 사실을 신고하
우연히 한 종편 방송에서 새롭게 선보인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특별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말이 아닌 오직 서로의 눈빛을 통해 진심을 전하는 내용이었는데, 단지 몇 분 간만 눈 맞춤을 했을 뿐이지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비록 시선을 마주치는 작은 일이었지만 서로의 오해와 갈등을 풀어주는 큰 역할을 했기에 훈훈한 감동까지 느낄 수 있었다. 불현듯 ‘자귀나무(Albizzia julibrissin Durazz)’가 떠올랐다. 매일 밤마다 작은 잎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기대어 화합하니 얼마나 돈독하고 아름다운가! 자귀나무는 하천변이
20대 국회의원중에서 형사처벌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사람이 12명에 달했다. 12명 모두 지역구 의원들이다. 1심에서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형을 받고 항소중인 의원 5명도 모두 지역구 의원들이다. 선거법 위반도 있지만,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도 많다. 정치부패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들이다.20대 국회의 비례대표 의원들 중에서는 다른 공직에 취임하기 위해 자진사퇴하거나 탈당을 해서 의원직을 상실한 경우는 있지만, 형사처벌을 받아서 의원직을 상실한 경우는 없다. 20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공천과정에서도 밀실공천은 있었지만, 돈공천
천리포수목원은 어느 계절이 가장 아름답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같은 장소지만, 해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때는 목련이 흐드러지는 봄이 되었다가,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나는 여름이 되었다가, 연못에 파란 하늘이 푸르게 물드는 가을이 되기도 한다. 요즘들어 내게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바로 계절과 계절 사이, 철이 바뀌는 환절기이다. 죽음과 탄생이 공존하는 계절은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처연하게 사그라드는 꽃들 사이로, 쫑긋하게 머리를 세우며 조심스레 피어오르는 생명을 볼 수 있기에 오히려 꽃들이 만발한 계절보다 더 입체적
천리포수목원 마케팅팀장 최 수 진 지난 4월 28일부터 11박 13일의 일정으로 미국 미주리와 일리노이를 중심으로 그 일대에 있는 주요한 수목원과 식물원을 둘러보았다. 이번 출장은 내년 천리포수목원에서 개최 할 국제목련학회 총회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금년도 총회에 참석해 준비사항을 점검하고 집행부와 최종 행사 내용을 결정하기 위한 목적이었다.시카고에 위치한 모튼수목원(Morton Arboretum)이 주관이 되어 열린 국제목련학회는 미국을 포함해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 총 7개국에서 온 목련 애호가와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하 승 수 5월인데도 초여름같은 날들이 많다. 올해 여름도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는 여름이 될 듯하다.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고서는 여름을 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기후변화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가뭄과 홍수, 슈퍼태풍과 산불은 점점 심각해지고, 멸종되는 동.식물도 늘어날 것이다. 인간이라고 해서 안전하지 않다. 기후변화는 식량위기, 물위기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곡물자급률이 20%대에 불과한데다 3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은 식량위기가 닥칠 경우, 매우 취약한 상황에
태안열린병원 원장, 정형외과전문의 김 동 혁 이번엔 골다공증에 좋은 음식과 운동법에 대해 알아보려합니다.골다공증폐경기 이후 여성은 에스트로겐이라는 여성 호르몬 감소로 골질량이 감소되어 골다공증의 위험이 높아집니다. 젊은 여성 중에서도 생리 불순을 보이면서 에스트로겐 양이 적은 분들이 있을 수 있고 조기 폐경이 오는 경우도 많으므로 생리 불순이 있다면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술과 담배, 비만, 운동 부족으로 인해 남성들에게서도 골다공증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 칼슘과 비타
전 태안문화원장양송(陽松) 정 우 영 이상과 같이 안면도의 광영학교 내에는 대한독립단 서산군지부가 있었으며 대한독립단 소속하에 안면결사대가 조직되어 이종헌 선생이 대장을 맡고 있었다.그런데 거사에 실패하면서 이들이 구속되기에 이르자 누구하나 이들에게 동정하거나 인정해주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석방된 이후에도 이들은 항상 일경들의 감시속에서 요시찰 인물로 지정되어 살아가야만 하는 암울한 처지가 계속되었다.그러다가 1945년에 광복을 맞이하여 이종헌(李鍾憲) 교장이 안면면장을 역임하기는 하였지만 그 이외의 인사들은 광복의 기쁨은
전 태안문화원장지해(智海) 정 우 영 이와같은 안면도의 독립운동 사실에 대해 당시에 보도되었던 신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어 당시의 신문기사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매일신보 > 1920년 3월 29일-瑞山(서산)에 獨立運動者(독립운동자)-京城出生(경성출생) 이왕 세브란스병원에 고용되었던 李祥聖(이상성) 외 3인은 서산 안면동에 들어가서 동지 광영학교 교장 李祥賢(이상현)과 기맥을 통하여 各種文書(각종문서)를 배포한일을 서산경찰서에 탐지되어 그중 40여명을 검거 취조한후 검사국으로 보내었다더라.위의 신문내용 중에는 광영학
전 태안문화원장양송(陽松) 정 우 영 해미면 억대리가 고향이었던 서병철(徐炳轍 : 1893-1977)선생은 독립운동가인 공주출신의 이종성(李鍾聲) 선생을 알게된 이후 1918년 4월 대한독립단원으로 가입을 하게 된다.그렇다가 다음해인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면서 독립운동이 확산되자 상해임시정부에 재무관으로 참여하고는 대한독립단 서산군지부를 설립하려고 이종성(李鍾聲)선생과 함께 고향인 서산(瑞山)으로 돌아온다.그리하여 동지들을 규합하던중 미국 하와이에 거주하던 이혜수(李惠受)씨의 부인인 유태길(劉泰吉)여사가 서산에 나타나 힘을
전 태안문화원장, 지해(智海) 정 우 영 그렇다면 이웃지역에서는 기미년인 1919년에 독립운동이 활발하였음이 확인되는데 우리지역인 태안에서도 기미년에 독립운동이 있었을까?우리지역에서도 있었다.1919년 3월 21일 저녁예배를 마친 구세군 신도들과 시일예식을 마친 천도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태안시내가 아닌 산간에서 또는 해안가에서 한밤중에 횃불을 들고 독립선언서를 읽으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는데 일경들이 쫓아가자 도주하여 붙잡지를 못하였다는 경찰관서의 기록들이 보이는데 누구들인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필자는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
전 태안문화원장 양송(暘松) 정 우 영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인 기미년에 우리지역에서는 어떠한 독립운동이 있었을까?우리지역에는 33인중의 한분이신 이종일(李鍾一) 선생님과 미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문양목(文讓穆) 선생님이 계시다.그렇지만 이분들은 전국을 주도하신 훌륭하신 독립운동가들 이시지만 우리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것은 아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지역에서도 100년전인 기미년에 독립운동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들이 생긴다.그리하여 필자는 당시 우리지역에서 있었던 독립운동사를 소개하고자 한다.를 살펴보면 1919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하 승 수 한국의 정당법을 보면, 놀라운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정당의 중앙당은 수도에 둬야 한다’는 조항이다. 이 조항이 어떻게 해서 정당법에 들어가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62년 12월 31일 최초 제정된 ‘정당법’ 제3조에서부터 그런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한마디로 ‘정치의 분권’이라든지 지역정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정당법이 최초제정된 시절은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화가 진행된지 30년이 지났지만 이 조항은 그대로 남아 있다. 기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