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오피니언 > 칼럼
수학은 배워서 어따 써 먹어요?
조우상  |  taeannew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2.10.20  09:18:1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태안문학회장 조우상

수학을 가르치면서 지겹게 듣는 말이다. 동시에 대답하기가 가장 난감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예외가 없다. 수학은 정말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까? 그 질문에 세뇌되어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나 자신도 가끔 그들과 같은 의문에 빠지기도 한다. 정말 수학은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까? 수학은 배워도 써먹을 곳이 없는 것인가? 그럼 써먹을 곳도 없는 수학은 왜 그토록 중요한 과목 중의 하나로 학생들을 괴롭히는가? 왜 선생님과 엄마들은 다른 것은 못 해도 국, 영, 수만큼은 잘해야 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는 것일까? 단지 대학에 잘 가기 위해서라면 그 이유와 논리가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다시 묻는다. “수학은 배워서 어디에 써먹어요?” 다시 생각해봐도 어떤 수학 문제보다 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이다. ‘1+1=2이다.’ 이 식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참이다. 물 한 방울 더하기 물 한 방울은 물방울 1개가 된다는 다소 철학적이거나 난센스 같은 예를 제외하고, 그럼 ‘사과 1개 더하기 사과 1개는 사과 2개이다.’ 이 문장은 어떤가? 참인가? 거짓인가?  초중고 학창 시절에 배운 교과 내용을 사회생활에서 써먹는 경우는 과연 얼마나 될까? 국어 시간에 배운 두음법칙, 구개음화, 역행동화 등등, 우리는 생활 속에서 이러한 것들을 의식하면서 언어를 쓰지는 않는다. 국어 시간에 배운 것이 이럴진대 수학 시간에 배우는 미적분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중요하다는 영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화 시대라는 요즘 영어뿐만 아니라 외국어의 중요성은 크다. 그런데 요즘은 핸드폰에 어플 하나만 깔면 굳이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어지간한 의사소통은 충분하니 더 말할 필요 없을 것 같다. 국영수 과목이 이 정도면 다른 과목은 어떨 것인가? 그렇다면 적어도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교과 내용은 한 과목도 써먹을 곳이 없다는 결론이다. 슬프게도 나는 이 결론에 완벽한 반론으로 학생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정말 수학 공부는 쓸모가 없는가?  다시 돌아가 보자. ‘1+1=2이다.’라는 명제는 수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명백한 참이다. 수학적이라는 말은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말하지는 않는 항진(恒眞) 명제를 뜻하며, 상식적이라는 말은 한 집단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 다수가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어떤 사실을 말한다.  ‘사과 1개 더하기 사과 1개는 사과 2개이다.’라는 말은 맞는 말일까? 틀린 말일까? 수학적으로는 틀리고 일반적으로는 맞다. 눈으로 보이는 2개의 사과가 있으므로 일반적인 언어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수학의 언어로 보면 어떤가. 수학은 경험의 학문이 아니다. 수학은 상상의 학문이며 상상을 실현하는 고도로 추상화된 해석의 학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발명과 유에서 또 다른 새로운 유를 찾아내는 발견, 그 경계의 어디쯤에 수학은 존재한다. 그게 수학의 언어다. 항진을 추구하는 수학의 언어로는 명백하게 틀린 말이다.
  여기 2개의 사과가 있다. 그 사과 중 1개와 또 다른 사과 1개를 더하면 사과 2개가 된다는 것은 경험적 사실이다. 그 경험적 사실은 ‘1+1=2이다’, 라는 수식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에 그 두 개의 사과 중 한 개의 무게는 100g이고 다른 1개의 무게는 200g이라면 어떤가? 눈에 보이는 사과의 개수는 2개가 틀림없다. 하지만 그 두 개의 무게는 총 300g이 된다. 1개를 100g짜리로 보면 300g이 되니 100g짜리 3개가 될 수 있고, 1개를 200g짜리로 보면 1개 반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식으로 나타내면 ‘3=1.5이다.’라는 식이 된다. 이는 맞는 말인가? 수학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틀린 말이다.
  이 말이 수학적으로 맞으려면 그 전제가 명확해야 한다. 즉, 100g짜리 사과 1개와 다른 100g짜리 사과 1개를 더하면 100g짜리 사과 2개가 된다, 와 같은.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무게만 같을 뿐이지 모양과 색깔 등은 또 다르다. 그게 100g짜리 썩은 사과 1개와 100g짜리 성한 사과 1개라면 또 다른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어떤 전제가 같으려면 모든 상태가 동일해야 한다. 그런데 현상의 세계에서 동일한 두 물체는 존재하기 어렵다. 이때 ‘수’가 필요한 것이다. ‘수’는 고도로 추상화된 개념이다. ‘수’ 1과 ‘수’ 1이 더해지면 정확하게 ‘수’ 2가 된다. ‘수’ 대신에 다른 ‘사물’로 치환되는 순간 모든 수학적 연산의 개념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반면 모든 ‘사물’의 개수는 ‘수’로의 치환이 가능하다. 사물이 수로 치환되는 순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통장에 10만 원이 들어 있다. 그 10만 원은 1만 원짜리 10장인가, 아니면 5만 원짜리 2장인가. 통장 안에는 현금의 실체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 10만 원을 정확하게 인지한다. 현금(현물)이 모두 숫자로 치환되어 통장에 찍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학이 필요하고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 수학은 이런 전제에 대한 논리의 모순을 명쾌하게 해결한다. 이는 결국 모든 사회 현상에도 적용된다. 아니 그렇게 적용해야만 오류가 없다. 그렇지 않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실체적 현상만으로는 ‘3=1.5’이다, 라는 명백한 오류가 발생하는 상황을 막을 길이 없다. 입법부에서 만든 법을 그 법의 시행 주체인 행정부에서 시행령으로 상위법을 무력화 시키는 것과 같은 전제의 모순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수학자는 하나의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오류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다시 그 오류를 수정하고 때론 처음으로 돌아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증명 끝’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무엇인가 선택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현대 사회가 복잡하고 구조가 다양해질수록 그런 판단과 결정은 더 치밀하고 고도화, 전문화되고 있다. 그런데 어떤 판단이나 결정이 합리적 과정이나 생각이 없는 개인의 감정이나 편협한 판단만으로 결정된다면 그곳에는 필시 오류가 생기게 마련이다. 어떤 일에 있어 순간의 잘못된 판단은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런 오판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우선 결론을 이끄는 올바른 전제가 있어야 한다. 전제가 바르지 않으면 어떤 과정도 올바른 결론에 이르기 어렵다.
  수학자 조던 엘런버그는 “수학의 도구들을 손에 쥐고 있으면 세상을 더 깊게, 더 올바르게, 더 의미 있게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수학은 정답을 찾는 공부가 아니라 ‘틀리지 않는 법’을 배우는 최소한의 공부다. 정해진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올바른 전제를 통해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하나의 규범과 틀을 만들고 그것을 모든 것에 치환해도 오류가 없는 보편의 가치를 만드는 생각의 과정, 생각의 질서를 배우는 것이 수학이다. 그것이 우리가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이보다 더 쓸모있는 공부가 또 어디 있으랴.

조우상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가장 많이 본뉴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구독신청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군청로 32, 2층(신흥빌딩)  |  대표전화 : 041)673-7762~3  |  팩스 : 041)673-7761  |  청소년보호책임자 : 편집국장 신문웅
등록일 : 2015년 12월 3일  |  등록번호 : 충남, 아00286  |  제호 : 주간 태안신문  |  발행인 : 이재인  |  편집인 : 신문웅
Copyright © 2023 태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