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언덕길을 따라 해변으로 내려오자 텅 빈 갯벌이 눈에 들어온다. 허리를 굽힌 채 갯지렁이를 잡던 포수들은 하나둘 갯벌을 떠났고 그 빈자리에는 낚시어선 2척이 지키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웅도(熊島)를 그리워했던 노루목쟁이는 소나무 몇 그루 등에 업고 애잔한 모습으로 서 있다. 노루목쟁이로 가는 소나무 숲길에는 우주선같이 생긴 노란 집이 눈에 띈다.
변덕쟁이 가을 날씨는 비가 오다 멈추길 반복한다. 검은 먹구름 사이로 강한 햇살이 조도(鳥島) 앞바다 갯벌 위로 내려앉는 영롱한 빛을 렌즈에 담아본다. 다랑논을 지나 갈대밭 근처에 도착하니 애절한 갈대 울음소리가 부른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시인의 시를 읊으며 검은 가을하늘을 향해 긴 호흡을 해본다. 바람이 잠잠해지자 갈대밭은 조용해졌고 방게 한 마리가 신나게 갈대 줄기를 기어오르고 있다. 순간 내 눈과 마주치자 재빨리 몸을 숨긴다.
짓궂은 날씨를 미워하면서 칠면초군락을 지나 제방 위로 올라섰다. 억세게 자란 풀들이 뚝을 완벽한 자기들 영역으로 만들었다. 제방 위로 걷는 것은 절대 허락되지 않을 태세이다. 차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 흰다리새우를 키우는 대호수산(편무호 사장)으로 건너왔다.
"88년에 저 혼자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간척사업을 해서 오늘날까지 이 자리에서 새우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4월부터 10월까지 농사를 짓고 지금부터는 내년 농사를 위한 준비를 하지요. 새우가 튼튼하게 잘 자랄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드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환경에서 키우는 양어장 이야기를 듣고 텅 빈 해변으로 걸어 내려왔다. 양어장에서 사용할 수로관이 해변에 길게 누워있다. 멀리 보이는 산모퉁이에 밀물을 기다리는 가마우지들이 바위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모습이 정겨워 보여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야속하게 날아간다. 작은 갯골에 댕가리들이 머리를 맞대고 꼼지락거리며 열심히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그 사이로 가끔 능쟁이(칠게) 한두 마리가 느리게 기어 다닐 뿐 갯벌은 조용하다.
서서히 밀물이 물길을 찾아서 돌아오면서 조용했던 해변은 다시 생기를 찾는다. 노루목쟁이에도 밀물이 새 옷을 입혀주고 있다. 웅도(熊島), 우도(牛島), 새섬(鳥島)에 감싸인 노루목쟁이 해변으로 돌아온 밀물을 반갑게 맞이하며 가로림만 해변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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