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안 마도 4호선은 나주(羅州)에서 한양 광흥창(廣興倉)으로 가던 조운선으로 밝혀져
▶  ‘내섬(內贍)’이라는 명문으로 미루어 마도 4호선은 15세기 초반 태종 시기 조운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015년 충남 태안군 마도 해역에서 마도 4호선 수중발굴을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선체의 잔존 규모는 길이 13m, 폭 5m이며 ‘광흥창(廣興倉)’이 적힌 목간, ‘내섬(內贍)‘이 적힌 분청사기 등 총 386점의 유물을 발굴하였다. 아울러 동반 유물과 선박 구조 등을 통해 수중발굴역사상 최초의 조선 시대 조운선(漕運船)임을 확인하였다.

   
▲ ▲ ‘나주광흥창(羅州廣興倉)’명 목간
   
▲ ▲ ‘내섬(內贍)’명 분청사기

  조선시대 조운제도의 실증적 자료

선체 내부에서는 목간 63점이 함께 출수되었다. 목간 대부분에는 발신처인 나주와 수신처인 광흥창을 뜻하는 나주광흥창(羅州廣興倉)이 적혀있었으며, 이는 전라남도 나주 영산창(榮山倉)에서 거둬들인 세곡 또는 공납품을 관리의 녹봉을 관리하던 조선시대 국가 기관인 한양의 광흥창(廣興倉)으로 옮겼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시대 편년의 단초 내섬(內贍)

 출수된 분청사기는 155점으로 그 중 3점에 ‘내섬(內贍)’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조선시대 궁궐의 물품을 관리하던 내섬시(內贍寺)를 의미하는데 ‘내섬’을 분청사기에 새기기 시작한 때는 관청의 명칭을 표기하도록 하는 1417년(태종 17) 전후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출토된 도자기와 조운선의 시대는 15세기 초반임을 알 수 있었다.

출토된 목간과 분청사기 등의 유물들은 조선 시대 초기 공납제도의 모습과 당시 공물의 운송방식인 조운(漕運)에 대해 최초 확인된 실증 자료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수중에서 발견된 최초의 조선 시대 선박으로 해양사, 경제사, 도자사, 선박사, 문화사 등 다양한 분야에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글 /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진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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