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 를 창립하고 그 해 가을 창간호를 발간했다. 총 408쪽으로 만들었고 2천부를 찍었다. 이 책에는 창간을 기념하기 위한 ‘대특집’이 꾸며져 있다. 그 대특집의 이름은 ‘우리 고장에서의 동학혁명의 모습’이다. 동학혁명 선열들께 드리는 ‘헌시’와 대특집의 ‘취지문’을 시작으로 동학혁명에 참가한 이들의 사찬(私撰) 기록들인 ‘북접일기(北接日記)’ 1·2권과 ‘조석헌 역사(曺錫憲 歷史)’, ‘문장준 역사(文章峻 歷史)’의 내용과 발견 경위, 그 외 여러 가지 관련 사항들을 정리하여 소개했다. 그리고 1894년 갑오동학혁명의 전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선열들 중 태안군에 적을 두었던 총 186명의 명단을 수록했다. 이름과 함께 면(面) 리(里)까지 주소지를 명기했고 ‘참살 내용’까지 적었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기록’이라는 것이 일찍부터 생활화되지 못했다. 문자라는 것이 양반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데다가 한자 자체가 위압감을 주는 탓이었고,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한글이 오래 언문으로 불리며 박대를 받아온 탓이기도 하다. 또 기록은 자칫 화를 불러오기도 하는 것이기에 서민 대중이 ‘기록의 가치’를 인식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저런 사실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못한 관계로, 한국천주교는 100년에 걸쳐 수많은 박해를 겪으며 1만 명이 넘는 순교자를 내었지만, 신유(1801년)박해의 순교자들은 제외되고 기해(1839년), 병오(1846년), 병인(1866년)박해 순교자들 중에서도 확실한 기록이 뒷받침되는 103위만 1984년 ‘성인품’에 오를 수 있었다. 동학도 사정은
태안 백화산(白華山)은 성스러운 관음도량(觀音道場)으로 마애삼존불상(磨崖三尊佛像)이 모셔져 있는 영산(靈山)이고, 태안군의 진산(鎭山)으로 나라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우순풍조(雨順風調) 그리고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 드리던 도교(道敎)의 태일전(太一殿) 터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산은 태안팔경(泰安八景)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이러한 성지(聖地)임에도 불구하고 불행했던 비극적인 현장이 있다.바로 이 산 기슭에 수많은 갑오동학농민혁명군(이하 '동학군'이라 약칭함)들이 무참하게 학살되었던 유서 깊은 교장(絞杖)바위가 있어 천추의 한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이 끔찍하고 잔인한 학살행위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외세 왜적을 끌어들여 동족을 살육
지난 3월 27일 오전 11시, 소원면 시목2리 마을회관에서는 매우 색다르고도 뜻깊은 행사가 있었다. 마을의 지리 역사 문화와 총체적인 면모를 담은 를 출간하고, 온 주민들이 모여 출판기념회 행사를 가진 것이다. 토요일 오전이라 학생들과 젊은층이 없는 것이 다소 아쉬웠지만, 주민들이 마을회관 마당에 꽉 차게 모여서 잔치분위기를 실감케 했다. 그리고 태안군과 소원면의 다수 기관장 외로도 서울 등지에서 여러 출향인들이 와서 이 잔치를 축하해 주었다. 기념식 자리에서 맨 먼저 축사를 한 정우영 태안문화원장은 “향토지라고 하면 대개들 시·군지나 읍·면지를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리지가 향토지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호남이나 영남지방에 가면 많은 리지들을 볼 수가 있는데, 양반동네라고 하는 충
음식을 만들어 상차림을 하려면 꼭 그릇이 필요한데 그때 그릇이 찌그러지거나 온전하거나 그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찌그러진 그릇밖에 없다면 그 그릇에 음식을 담으려는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하나의 그릇을 만들 때도 거기엔 물과 흙, 바람과 불, 또한 혼이 혼합되어 완성되어야 결정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릇이 작으냐 크냐 하는 문제도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다섯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를 배제해서도, 다른 편견을 두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릇을 만들 때 가장 으뜸으로 꼽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건 무엇보다 정신의 발로인 혼이라고 생각합니다.혼. 사실 그것이 보이기는 하던가요. 그것을 다르게 이야기하면 양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
17대 총선이 불과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당 공천자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다당제 구도에 정치신인들이 대거 총선에 나서고 있고 새로 도입되는 1인 2투표제 등으로 선거판은 이미 달구어져 있다. 언론들도 연일 선거 관련 보도를 쏟아내는 등 총선대열에 합류했다. 어쨌든 현재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안이 한창 논의되고 있긴 하지만 명확한 것은 이번 선거가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열망 속에 치러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열망을 갖고 있는 국민들은 항상 언론보도의 들러리에 불과하다. 따지고 보면 선거라는 행위는 유권자들이 권리를 행사하는 축제의 장이다. 자신들의 대표를 뽑아 민의를 대변토록 하는 대의 민주주의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행위를 기쁘게 생각하고 한
태안반도 서해 해변은 국립공원 지역 태안반도 서해 해변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충남 태안반도의 가로림만에서 안면도 (安眠 島)에 이르는 약 328.9㎢ 면적(태안군 292.2㎢, 보령시 36.61㎢, 그 중 육지는 38.6 ㎢, 해상은 290.3㎢)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바로 1년?전인 1978년 10월 서산해안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태안이 서산시에서 복군된 이듬해인 1990년 3월 태안해안 국립공원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특이한 사항으로는 보존 가치가 무엇보다도 큰 태안반도 최대의 해안사구(海岸砂丘- 모래언덕) 지역인 신두리 해안사구(국내 최대의 해안사구)와? 꽃지해수욕장 해안사구가 유독 국립 공원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많은 해수욕장과 해안사구가 분포 안면도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라 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지 12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반쪽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만능으로 생각되었던 민선자치가 실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의 획일적 지배가 창의성과 잠재력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방분권특별법과 국토균형발전특별법이 마련됨에 따라 형식적으로는 지역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방특성을 활성화시킬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변화는 그 동안 지방자치단체의 줄기찬 분권 요구와 참여정부의 국정정책이 소위 코드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권한만큼 책임의 한계도 높아져서 자치단체간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요즘 세상이 뒤숭숭하다. 너무나 어둡고 침침한 긴 터널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이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 모두가 부정, 부패, 불법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권력을 잡기 위하여, 명예를 얻기 위하여 부정한 돈을 차 떼기로 수백억원씩 거두어들이고 명예와 권력을 얻으려는 정치하는 사람들, 돈을 쥐고 있는 기업하는 재벌들이 은밀하게 손잡고 뒷거래를 해 온 것이다. 정작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속여 부정하게 명예를 사고 권력을 잡기에 혈안이 되어 온 것이다. 정치와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가 법의 단죄 앞에 무릎을 꿇게 된 듯 하다. 과거 수십년간 이처럼 더러운 뒷거래가 관행화 된 듯 싶지만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나선 지도자 하나 없었다는 것은
고교 시절 성당에서 성가 배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아직 배우지 못한 성가들에 대한 호기심을 늘 지니고 있었고, 하나씩 성가를 배울 때마다 곡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듯 감동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많은 친구들을 성당으로 데리고 와서 이 아름다운 노래들을 듣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내가 고교 시절 수십 명의 남녀 중·고생들을 성당에 오게 한 것도(그 중의 상당수가 후에 영세를 했고, 일부는 지금도 태안 성당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일정 부분은 성가와 관련하는 그런 묘한 욕구가 작용한 덕이었다. ?하지만 내 기대가 어그러지는 경우들도 있었다. 친구가 성당에 한번 와서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면 감동을 한 나머지 그 날로 예비 신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내 기대와는 달리 전혀 감동의 기색을 보이
호는 청년거사요. 본명은 이태백(李太白). 자(별칭)는 태백. 중국 당나라 시인의 이름이다. 두보와 함께 소위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는 평생 도교에 심취하였고 선인(仙人)을 찾아 헤매는 등 “술”과 “달”을 친구삼아 지낸 이야기 등은 풍류객들이 좋아하는 원조 할아버지 격 시인이다. 1,100여편의 현존 작품이 전해 내려와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음이다. “이태백 하면 주선 또는 주태택(술꾼)”으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최근 중국에서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며 역사를 고치려 하고 있다고 들린다. 이·두를 최고의 풍류시인으로 친다면 우리나라의 황진이·김병연(김삿갓)도 그 들에게 견줄만한 자연주의 시인들이 아니였나 생각케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후손들은 중국
지난 17일 우리 고장에서는 가수 이미자씨의 ‘공연’이 있었다. 오후 3시와 7시, 두 번의 공연에 유료 입장은 2천 명 정도라는 게 대체적인 추산이다. 주최측은 처음부터 태안문예회관으로는 관객 수용이 어림없으리라는 판단으로 아예 문예회관 바로 옆에 있는 군민체육관을 공연 장소로 택했다. ‘이미자 효(孝) 콘서트’라는 이름의 공연 광고가 11월 28일자 16면(맨 뒷면)의 전면을 차지하고 지역사회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 그것은 단박 거의 모든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사람들마다 하루에 한번 이상 ‘이미자 쇼’ 얘기를 했을 법하다. 이미자 온대. 이미자 보러 안 갈래? 왜 안가, 이미자 보러 가야지. 평생에 다시없을 기횐데…. 태안 성당 성가대의 여성 단원 중에 이미자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계미년 새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연말이 되었다.거리에는 어김없이 구세군의 자선남비가 등장하였고, 성급한 상인들은 벌써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틀어놓고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나는 이렇게 연말이 되면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허송세월 한 것 같아 공연히 마음이 심난해진다.한해를 시작할 때는 금년에는 이런 일을 반드시 하겠노라고 다짐을 해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두가 헛 다짐이었던 것을 후회하곤 한다.바로 엊그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새 3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이제 정년을 몇 년 앞둔 이 시점에서 나는 어떻게 보람되게 마무리를 해야할까를 조용히 생각해보곤 한다.지난달 어느 날, 수년전에 안양경찰서에서 수사간부로 있을 때 알았던 분이 사전에 아무 연락도 없이
노무현 대통령의 특검수용 거부로 여야가 대치하면서 국회가 마비됐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볼모로 정쟁에 몰두해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올해 정기국회에서는 조금 예외적인 일이 일어났다. 여야 의원들이 뜻을 같이해 지역신문을 지원하자고 나선 것이다. 한나라당의 고흥길의원, 열린 우리당의 김성호 의원이 각각 지역신문을 지원하자는 법안을 상임위에 제출했다. 여기에는 자민련과 민주당의원들도 발의에 참여했다. 경영부실로 인해 지역언론의 공적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결국 지역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여야 의원들이 공감한 것이다. 그러나 제출된 법안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고흥길 의원이 제출한 법안은 부수발행공사에 가입한 지역일간지만을 지원하되, 다른 지원조건을 제
어느새 10월도 중순을 넘어 며칠 있으면 11월로 접어든다.덥다고 호들갑을 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가을도 깊어져 산에는 단풍으로 곱게 옷을 갈아입었고 조석으로 싸늘한 바람결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다.새삼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면서 한편으론 세월의 덧 없음이 야속하고 허전하기만 하다.그래서 옛 선인들은 흐르는 세월을 “유수와 같다”느니 “쏜살 같다”고 하면서 슬퍼했다고 하지 않는가!밤 늦은 시각,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고 있노라면 정원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와 가을 벌레들의 울음 소리는 더욱 나의 마음을 슬프게 하면서 잠 못들게 하고 있다.유난히도 가을을 타는 나는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어떤 향수병같은 것으로 가슴이 져며오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이러
얼마 전! 여름의 진한 폭염 속에서 고향 땅 태안의 오지마을에 계시던 큰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평소 조용하신 성격에 음식솜씨 좋고 길쌈솜씨 또한 뛰어나 고향마을은 물론 인근 마을에서도 칭찬을 받으셨던 분인데 말년에 치매로 몇 년간 모진 고생을 다하시다가 참으로 불쌍하게 가셨다.장조카인 내가 찾아뵈올 때는 정갈한 모습을 잃지 않으시며 좋아하셨던 큰어머니가 치매 병에 드신 후에는 “아저씨 누구세요? 왜 오셨어요?”하며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보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사십여 년전!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많은 사람들은 먹을 것이 부족하여 봄이면 누렇게 부황이 들어 있었고 먹거리를 만들기 위하여 들로 산으로 그리고 바다로 헤매였다.그렇게 어려웠던 시절!큰댁에서는 그래도 제사 등 잦은
2003. 8. 17 오후 7시30분. 무더위가 한창인 한여름밤에 "우리 태안인 테너 심송학 음대교수의 음악회 독창회"에 실로 간만에 감상을 할 기회를 갖었다.이글을 태안신문에 소개하게 된 것은 태안인 심송학 음대 교수가 작년에 월드컵 대회 대구에서 애국가를 부른 사실을 많은 태안인들이 모르고 있어 자랑할겸 소개를 한다.경찰과 테너 심송학 독창회. 그리고 음악감상이라! 어딘가 맞지않는 화음같기도 하지만 필자는 고향인 이기전에 태안고등학교 1년차 선후배 지간이고 소위 심송학 교수가 음악인이 되기전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방과후 땅거미질 무렵까지 교실에서 태안말로 "께악"거릴때부터 즉, 기초단계부터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하고 발성연습을 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 보았기에 성공한 음악인이래서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
‘삶의 질 향상’이 우리시대의 최고의 화두로 떠오르며 최근 사회복지계의 환경은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서비스 대상은 종래 취약계층 중심에서 모든 계층으로 확대 되고있다. 또한 복지욕구의 다양화에 따라 주로 입소 중심의 거주시설에서 재가서비스 이용시설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지방분권화, 지방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군·구 사회복지협의회의 법적 설치 근거(지난 6월 30일 국회본회의 통과)가 마련됨에 따라 사회복지협의회의 역할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00년 9월7일 법정 기념일로 정한 민간복지의 최대의 축제인 사회복지의 날
얼마 전 새벽!전화벨 소리에 잠이 깨어 전화를 받아보니 고향땅 태안에서 이장일을 보시며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는 사촌형님이었다.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동네 형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신다.작년 연말, 고향을 방문하였을 때 우연히 길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몇 개월만에 세상을 뜨셨다고 하니 그저 허망한 생각뿐이다.고향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고향을 굳건히 지키며 열심히 사시던 분들이 하나 둘씩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그 빈자리가 허전하고 인생의 허무함과 세월의 덧없음이 새롭게 다가온다.지난 6월말경, 나는 TV뉴스와 신문 보도를 보고 망연자실한 일이 있다.내 고향 태안땅에서 빚에 쪼들린 30대 가장이 어린 두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기도하여 중태에 빠졌다
지난 6월 26일 충남도 행정동우회원 160여명이 태안군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을 찾아 자연정화 활동을 하였다. 과거 나와 함께 공직생활 했던 친구도 있었고 직장상사로 모시었던 분도 있었다. 모두들 나의 공직생활기간동안 동고동락한 선후배들의 만남이었다. 그날 그곳에서 만난 많은 친우들이 농촌생활의 고생여부를 물으면서 꼭?? 이처럼 농촌에 묻혀 살아야만 하겠느냐는 질문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영원한 촌놈으로 이곳에서 살다가 땅에 묻힐 것”이라고 나는 솔직히 말해서 도시체질이 못되는 것 같았다. 70년대 도시화 사회에서도 농촌을 떠나 도시로, 공장지대로 향하는 농촌 후배들을 크게 환영하지 않았다. 공직생활 때문에 고향을 떠나 도회지 대전에서 30여년을 살았으나 정이 붙지 않고 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