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 저자 20세기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는 죽음에 몰린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 있는 교훈이 있다. 사랑, 인간관계, 시간, 두려움, 인내, 놀이, 용서, 받아들임, 상실과 행복 등이다. 인간의 삶은 하나의 기회이고 아름다운 일터이다. 그래서 그 삶에서 불행과 행복을 누리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인가를 시도해 보았을까? 내 생각과 감정은 수시로 바꿀 수 있다. 감정변화의 가장 큰 부분은 두려움이다. 그런데 현재 두려움을 극복하면 또 다른 모든 감정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
수학을 가르치면서 지겹게 듣는 말이다. 동시에 대답하기가 가장 난감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예외가 없다. 수학은 정말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까? 그 질문에 세뇌되어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나 자신도 가끔 그들과 같은 의문에 빠지기도 한다. 정말 수학은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까? 수학은 배워도 써먹을 곳이 없는 것인가? 그럼 써먹을 곳도 없는 수학은 왜 그토록 중요한 과목 중의 하나로 학생들을 괴롭히는가? 왜 선생님과 엄마들은 다른 것은 못 해도 국, 영, 수만큼은 잘해야 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
지난 9. 9일자 태안칼럼에는 돈은 이렇게 썼으면 한다.였는데 이번에는 돈 버는 방법에 대한 사항을 써봤다. 개도 안 먹는 돈! 그러나 사람은 돈이 있어야 사람구실을 하며 살아갈 수 있고 돈 없으면 살아가기가 힘들고 사람들로부터 천대받게 되니 돈이면 못할일이 없다고 생각들을 해서 오나가나 너도나도 돈벌기에 기를 쓰고 나라마다 지역마다 경제를 외친다.그러나 돈은 정당한 방법으로 벌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정당하게 쓰여야 한다. 나도 돈을 많이 벌고 모아 부자가 되어
우리 가족의 하루는 04시 45분에 시작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이불을 개고 05시 10분경이면 모두가 집을 나선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 3학년 딸, 1학년 아들, 그리고 이번 4월에 태어난 막내아들까지 아이들 넷을 데리고 가끔은 백화산도 가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걷기도 한다. 그동안 아내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가족 모두가 이 시간에 일어나도 시간이 참 빠듯하다. 이렇게 정신없는 아침. 아이들은 학교로, 나는 직장으로 가고, 아내와 막내 아이만 남은 집은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는데, 그 고요한 시간 또한 그리 길지가 않다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태어나 부모의 사랑으로 자라고 또다시 한 가족이라는 테두리 만들고 살다가 간다. 그래서 가족은 선택이 아니다. 운명의 공동체로 부부의 인연을 맺고 형제가 가지처럼 인연이 되어 형님 동생으로 살아간다. 지금 전 세계는 엄청난 변화를 하고 있다. 그 변화의 바람 이 가정까지 파고들어 인식이 달라지는 엄청난 변화에 따라 가정의 삶의 위기를 쉽게 포기하는 바람이다. 변화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모순 안에서 눈과 귀에 진동하는 소리에 놓치는 순간에 쉽게 포기하는 것이 죽음이다. 경제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어린 시절. 정초가 되면 우리 마을 어른들은 산 중턱에 놓인 커다란 교자상에 음식을 차려놓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하늘에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고사 겸 제사를 지내는 일이었다. 그때 어른들은 집집마다 추렴하여 큰 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상 윗쪽 중앙에 돼지머리를 올려놓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아이들은 매년 그날을 기다렸다. 돼지의 생식기를 얻어 축구공을 만들어 놀고 얼마의 고기반찬과 잡채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아주머니들은 마을 우물가에서 커다란 함석 양동이에 가득 담긴 돼지 창자를 씻어내곤 했다. 물론 그 옆
개도 안먹는 돈! 그러나 사람에게 돈은 몸속의 피줄과 같이 살아움직이게 하여 나를 살아가게하고 세상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쌓아놓고 숭배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배척의 대상도 아니다. 만약 돈이 없으면 가족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천대, 학대받고 자식들도 찾아오지 않는다.그러므로 돈은 원수이고 마귀이지만 때로는 천사도 된다.그리고 적당한 돈은 안락을 주지만 막대한 돈은 권력을 주기도 한다. 또 돈이 돈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때 건전한 인간이 되고 사회질서가 제대로 서게 되므로 돈 많
우리 속담 중에 날씨와 관련된 속담이 많다. 그중에서 구름과 관련된 속담만 꼽아도 두 손으로 다 헤아리기 쉽지 않다. 대표적인 것 두 가지만 살펴보면, ‘뭉게구름이 뜨면 맑을 징조다.’, ‘새털구름이 보이면 비가 올 징조.’를 들 수 있다. 여기에서 뭉게구름은 적운을 가리키는데, 고기압권에서 날씨가 좋을 때 대류현상으로 흔하게 생기는 구름으로 과학적으로 옳은 표현이다. 새털구름은 권운을 지칭하는 것으로 저기압 전면에 나타나는 구름으로, 비가 오는 시간상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역시 맞는 표현이라 하겠다. 이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기후의 재앙은 예측 불허하기 어렵게 닥치는 재난이다. 재난(disaster)이라는 용어는 원래 별의 불길한 모습을 상징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하늘로부터 비롯된 인간의 통제가 불가능한 해로운 영향"으로 풀이한다. 어원상 분리, 파괴 불일치의 뜻이며 과거의 재난 홍수, 지진과 같은 대규모의 천재인 자연재해를 지칭하였으나, 현대사회에서는 대규모의 인위적 사고의 결과가 자연재해를 능가함에 따라 인위 재난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자연재해와 인적재난으로 이원화되어 사용되어 오던 재난의 개념을 통합하여, 에너지, 통신ㆍ교
과거의 ‘효’는 부모를 모시고 함께 살면서 물질적인 봉양을 기본으로 해서 불편이 없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효도’는 자식들이 속을 썩이지 않고 걱정없이 잘 살아가면서 부모들이 하고 싶은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요즈음 부모들 80% 이상이 자식들과 따로 살아가고 있다. 따로 사는 자식들은 자주 전화도 하고 찾아 뵙는 것만으로도 부부간 사이 좋게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모시고 사는 자식은 학대하지 않고 부부싸움 없이 형제자매간 우애를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효도하
무려 20여 차례의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지난 정부에 대해 민심은 술렁였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야당의 언어는 거칠었고 여당의 방어는 느슨했다. 결국 ‘부동산 정책 실패’가 한 원인이 되어 정권까지 바뀌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집값은 잡힐 것인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올라간 집값이 하루아침에 다시 내려간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그렇게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각 정당과 후보들은 공급확대, 세제개편 등 수많은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다. 그 정책의 면면을
나는 농사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농사 없이는 개인의 삶과 온 인류의 생명을 지탱할 수 없다. 그래서 하늘에서 비가 반듯이 내려야 살고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비를 몰고 오는 구름이 기다려진다. 농심이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한 애걸이다. 하늘에 비가 없다면은 인간은 살아갈 수가 없다. 하늘에서 농사철에 하늘에서 적당히 내려야 한다. 그런데 모내기 철에 필요한 물이 없이 해마다 논바닥이 타들어 간다.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나면 농민들 마음도 타들어 간다. 간절히 바라는 기원은 하늘의 단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소원이다. 가뭄은 지난해 말
백화산에 올랐다. 금북정맥의 암맥이 이어진 골이니만큼 바위가 군데군데 자주 보인다. 멀리서 보면 풍파에 다듬어진 굳센 어깨에 기대 그 부드러운 선에 볼을 부벼도 될 것 같다. 가까이에서 보면 위용보다는 검버섯 같은 이끼와 세월의 흔적들이 더 잘 보인다. 문득 바라보는데 바위는 참 우리네 아버지들을 닮았다. 우직한 사람을 ‘바위와 같다’ 표현한다. 바위는 말도 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다. 그래서 그와 같이 모진 세월에도 불평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의 표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바위 같은 사람이라고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이 성장해서 성인이 되어도 어릴때처럼 모든 활동에 실수는 하지 않는지 남들보다 뒤처지고 잘 못살지는 않는지 건강들은 괜찮은지 늘 조바심 하면서 불안해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원초적인 마음에서 울어나오는 것이므로 어쩔 수 없고 세계인의 모든 부모들도 자식사랑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서양선진국들은 자식이 성인(만18세)이 되면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은 받지 않고 필요한 생활비나 교육비등을 스스로 벌어 쓰거나 은행등에서 대출받아 쓰고 취업하거나 창업하여 수입이 있을 때 상환하는 것이 그나라들의
뱃 속의 아기가 입 속에 손가락을 넣고 있는 사진을 본다. 식욕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자 생존 욕구라는 생각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어쩌면 인간은 곧 그가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문구가 새삼 가슴으로 전해온다. 그래서 ‘음식문화의 역사와 맛의 추구는 그 자체가 역사다.’란 말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맛의 진실이 전해지는 데는 상당한 세월을 거쳐야만 했다. 인류의 진화와 사회·문화의 발전이 음식을 먹는 일과 훨씬 더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기 때문이다.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초식과 육식이 모두 가능했지
어느 마을에 어린 두 형제가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로 날마다 술에 찌들어 살았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욕을 하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다. 20년 후 두 형제는 장성한 어른이 된 큰아들은 의과대학의 저명한 교수가 되었다. 그는 술주정뱅이였던 자기 아버지를 생각하며 금주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이어받아 항상 병원 신세나 지는 폐인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현실을 앞에 놓인 똑같은 아버지를 보고 성장하면서 완전히 서로 다른 성격의 소유자로 성장한다. 인간은 개개인의 자유의지가 있다. 개개
매년 6월15일은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다. 우선 노인학대 예방의 날을 제정한 이유와 과정부터 살펴보면 세계적인노인인구 급증으로 노인학대범죄 등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세계인들에게 노인학대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유엔(UN)에서 2006년 6월 15일을 “세계노인학대 인식의 날”로 정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에 노인복지법을 근거로 국가지정 기념일로 해서 매년 6월15일을 “노인학대 예방의 날”로 지정하였는데 금년이 6회째다. 그러나 공휴일은 아니다.우리나라는 일본 강점기를 벗어나 대
6월을 보훈의 달로 정한 것은 나라를 위해 희생과 헌신한 사건들이 6월달에 많이 발생함으로 해서 국가보훈처에서 정하여 기념들을 하고 있다.사건들을 기념일로 지정한 이유들을 먼저 살펴보면, 매년 6월1일을 "의병의 날"로 정한 것은 임진왜란시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킨 음력4월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정한 것으로 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일깨워 애국정신을 계승하고자 2010년 제정한 법정기념일이지만 공휴일은 아니다.6월 6일 "현충일"은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치신분들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로 공휴일로 지정되어있다. 1945년 8월14일까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곡예사의 마술처럼 보인다.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며 다가오는 사람, 마주 오는 자전거를 잘도 피하며 지나간다. 통학버스 안의 학생들이 고개를 숙인 채로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이들도 하나 같이 앞만 보며 모니터와의 눈싸움이 치열하다. 심지어 장례식장에서조차 스마트폰과의 눈 맞춤은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아마 이러한 일상은 어제도 내일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손가락만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생물학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이런 현상이 오늘날 우리 세대의 대표적인 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 미국의 아동 문학가 의 감명스러운 동화의 내용이다. 유대인으로 시카고 출신인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현대사회 인간의 삶에 감명을 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세상에서 아낌없이 주는 이는 부모에 이외 다른 분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나무와 주인공 소년은 관계는 절친한 친구 사이다. 소년은 언제나 나뭇가지로 그네를 타고 사과도 따 먹고 즐겁게 함께 지내고 있었다. 세월이 가고 소년이 찾아오는 횟수가 줄어들자 나무는 매우 외롭고 쓸쓸했다. 어느 날 성장한 소년이 다시 찾아오자 나무는 기뻐하며 예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