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스무여드렛날, 무릎 사리, 중조기(中潮期), 오후 물때에 맞추어 가로림만 해변을 걷는다. 하늘은 잔뜩 화난 표정으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수평선 위에서는 어두운 구름 사이로 기러기 떼가 어디론가 바쁘게 날아가고, 해변에는 바닷물의 작별 인사로 어수선하다. 쏴~~악! 철썩! 작은 소리를 내며 물결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이다. 바닷물은 점점 해변에서 멀어져간다. 날이 추워진 탓 인지 바닷물을 따라나서는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다. 굴속에서 꼼짝 안 하고 집에만 있는 칠게, 말뚝망둥이, 새우, 고둥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길이 천
초겨울 차가운 바닷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어 온다. 온몸에 오싹오싹 찬기를 느끼면서 각양각색의 자갈들이 누워있는 해변을 걷는다. 바닷물이 해변을 향해 밀려와 자갈들을 짓궂게 건드리면 여지없이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대화 내용이 궁금해,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 귀를 기울여 본다. 파도를 온몸으로 맞이하면서 내는 자갈들의 소리는 바닷물처럼 맑고 청량하다. 모서리가 갈리고 갈려 동글동글한 모양의 돌멩이들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있는 장대에 연결된 빨랫줄에 코가 꿰어 대롱대롱 매달려
시우치 저수지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새벽 물안개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저수지 둑 너머에는 바닷물이 서서히 해변으로 돌아오고, 바다 건너 팔봉산에는 뜨거운 아침 태양이 산등성이를 붉은색으로 색칠하며 산을 넘어온다. 붉은 햇살이 잿빛 바다 위로 모습을 나타낼 때쯤 나는 청산 나루터에 도착했다. 구도 앞바다에는 붉은 햇살이 물 위쪽에서 살랑살랑 춤추며 놀고 있다. 밀물이 돌아오면서 조업하러 나가려는 배들은 바쁘게 기계 소리를 내며 나루터를 떠나고 있다. 청산리 어촌계 기영환계장님의 허락을 받고 계장님 배에 올라탔다. 배가 출발하자마자
하늘은 심술부리는 아이같이 맑았다 흐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물이 빠진 해변에 서서 섬으로 들어가는 자갈길을 비춰 줄 가을볕을 기다렸지만, 해무가 해를 가리고 있어 오늘은 동행이 힘들어 보인다.해변을 바쁘게 떠나는 썰물을 따라가지 못해, 길을 잃은 칠게 한 마리가 작은 웅덩이 안에서 불안해하며 집게다리를 들고 안절 부절하고 있다. 불안한 눈빛으로 내 눈치를 보면서 살그머니 바닥으로 숨는다. “뻘 밭으로 보내줄까?” 나의 제안을 알아들었는지, 집게발을 살며시 내려놓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눈치를 보고 있다. 집게 손으로 살짝 들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해무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가로림만의 새벽 해변에는 요란한 경운기 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형형색색의 작업복을 입은 활곡어촌계 회원들은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들처럼 완전무장 복장으로 경운기를 타고 어장으로 달려 나간다. 촘촘하게 뚫린 바지락 눈을 보는 순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작종이 울리지 않아도, 누구 하나 머뭇대는 사람 없이 온 힘을 다하여 바지락을 캐기 시작한다.숨이 막힐 정도로 불꽃 튀는 열정이 화끈화끈하게 느껴지는 현장에 열기는 대단하다. 그 열정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고 한참
상큼한 가을바람이 숲을 지키는 나무와 만나면서 만든 숲 소리와 청아한 새소리를 들으며 산길에서 해변으로 걸어 내려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로 이방인을 반겨주다니, 발걸음은 신이 났다. 자갈과 모래가 함께 있는 해변에 고풍스럽게 돌담으로 만들어놓은 샘이 해변을 지킨다. 샘 한쪽에서는 아이들 장난감처럼 "뽀글뽀글" 소리를 내며 물방울이 바닥에서 솟아오른다. 샘물의 색은 맑지는 않다. 손을 담가보니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갑고 짠맛은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물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닥에는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작은
바닷물은 우럴목을 향해 천천히 해변으로 돌아오고, 나는 파도가 조각한 돌조각들을 감상하며 해변을 걷는다.여러 해 동안 파도는 해식애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돌멩이들의 모서리를 갈고, 예쁘게 사포질을 한 후 해변에 납작한 돌들을 갖다 놓았다. 이렇게 다양한 모양과 모서리가 잘 다듬어진 납작한 돌멩이들이 차곡차곡 쌓여 해변을 지키고 있다. 파도가 만들어 놓은 자갈돌 위를 맨발로 걸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고 오히려 발바닥에 있는 모든 혈을 골고루 눌러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돌멩이 생김새가 과자 부스러기를 모아 놓은 것 같아, 하나씩 주워
여름이 떠난 자리에 찾아온 가을도 서서히 우리 곁을 떠날 채비를 하는 듯 바닷바람은 매일매일 차갑게 느껴진다. 가로림만 해변을 찾아온 방문객들은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해변을 감상하며 캠핑카에서 고기를 구워 먹은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붉은 저녁노을은 서서히 산등성이를 물들이기 시작하고, 바다 건너 청산리에서는 가을걷이가 끝난 밭에서 마른 나뭇가지들을 태우고 있다. 나뭇가지가 남긴 뽀얀 연기가 자유롭게 춤을 추는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해변을 걷는다.방파제 둑에는 낚시꾼들을 기다리는 파란 플라스틱 의자들이 줄지어 서있다. 주인이 낚싯바늘
‘봄 보리멸, 가을 망둥어'라는 말처럼 지금은 씨알이 굵고 맛좋은 망둥어가 잡힐 시기이다. 그래서 해변은 낚시꾼들이 만원이다. 알록달록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염생 식물이 영글어가는 씨앗을 머리에 무겁게 이고 있어 고개를 푹 숙이며 가을볕을 쬐고 있다.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밀물이 천천히 해변으로 돌아오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 역광 빛 사이로 여유롭게 낚싯대를 던지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물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낚시하는 아저씨가 계시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내가 열심히 걸어오는 것을 보시고 나에게 한마디 하신다.“사진 찍
가로림만을 걷다보면 자연이 긴 세월동안 만들어 놓은 멋있는 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모난 곳 없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가을이 찾아온 가로림만 해변을 걷는다.파란 하늘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바람이 불어주는 대로 살랑살랑 춤을 춘다. 뻘밭에서는 가을바람이 방향 없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가끔 뭉게구름이 해를 숨겨놓고 심술 굳게 바람을 놀리고 있다.그 사이 황새 한 마리는 긴 목을 쭉 빼고 큰 망둥이 한 마리를 잡았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갈매기 두 마리
풍부한 플랑크톤을 먹고 다양한 어종들이 서식하는 가로림만은 우리나라의 보물이다. 버려진 쓰레기로 인해 가로림만 바다가 많이 아프다. 너무 오랫동안 쓰레기가 방치되어 온몸이 곯아서 썩어가는 냄새가 난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로만을 치유해주려 만대 어촌계 분들이 모두 나왔다. 바다가 아프면 우리도 아프게 된다는 생각으로 긴 장화를 신고 낫, 호미와 삽을 들고 바다 쓰레기 청소를 시작했다. 고통의 신음을 내는 뻘밭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썩은 굴뻑들을 밟아주며 미안하지만 빨리 치유되기를 기도하며 걸었다. 우리가 버려서 묻혀있는 쓰레기
날이 밝아오면 바닷물이 해변을 서서히 떠나기 시작한다. 새벽을 맞이하는 해변에 그려놓은 그림을 감상하느라 눈과 마음이 바쁘다. 해변 위 이미지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뻘 속에 숨어있던 돌멩이들과 모래알들이 울퉁불퉁 돋아나오면서 해변은 고요해졌다. 갯고둥들은 바쁘게 빠져나가는 물길을 따라 기어가고 뻘 속에서 굴뻑들이 머리를 쫑긋하게 세우고 밖으로 나온다.밤새 텐트촌을 지킨 텐트 안에서 흘러나오는 코 고는 소리가 삼바 춤을 추듯 흐느적대며 해변을 굴러다닌다. 새벽잠을 깨울까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해변으로 내려와 갯고둥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태풍 하이선이 지나간 해변에는 물길이 깊게 파인 흔적이 크게 남아있다. 알록달록한 굵은 모래알들이 깨끗하게 씻겨져 햇볕에 몸을 말린다.황발이(붉은발 농게), 능쟁이(칠게), 돌장게, 풀게, 흰발농게 등 우리가 '게'라고 불리는 게들은 모두 모여 어젯밤 태풍이 왔다 간 이야기들을 나누는 듯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열심히 뻘밭을 기어 다닌다.내 발소리도 못 듣고 놀다가 깜짝 놀라 구멍으로 뛰어 들어간다. 급하게 들어간 집이 남의 집인지, 다시 뛰어나와 자기 집을 찾아 바삐 움직인다.흰발농게 한 친구는 너무 멀리 마실 나왔는지
“태풍 ‘마이삭’이 서해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강풍, 집중호우가 예상됩니다. 선박, 어망 어구 등 시설물 사전 점검, 대비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청산리 이장님 마을 방송이 바다 건너 도내리 해변에까지 아련한 메아리처럼 들려온다.들 물을 기다리던 백로 한 마리가 사냥하느라 긴 목을 물속에 자주 담그고, 개구쟁이 물오리 가족은 물장난을 치면서 신나게 놀고 있다.장맛비를 먹고 자란 갯줄(지채)이 해변 한가운데 넓은 군락을 이루었다. 갯줄밭에는 누가 살고 있을지 호기심에 조용히 지켜본다. 내 발소리를 듣고 안전하게 숨었
바닷물이 길을 열어주는 대로 철퍽철퍽 물길을 걸어 풀등에 도착했다. 풀등 위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을 것만 같았다. 바닷물이 하루에 두 번, 신비로운 길을 보여주고 사라지는 지매 섬 풀등, 자갈들은 어디서 왔는지, 오랫동안 쌓여 바다 한가운데 신비로운 길을 만들었다.오래전 미국 여행길에서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달렸던 길, 몽골 초원에서 이정표 하나 없이도 북두칠성을 보면서 초원을 걸었던 길. 지금이 길은 그때와 또 다른 느낌으로 신기루 위를 걷고 있다.물속에서 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갈매기들이 도
섬까지 오토바이와 트럭이 들어간다. 물이 빠지면서 물속에서 놀던 물고기들이 떠나고 자갈돌이 길을 지키는 뻘길을 걷는다. 발걸음 소리에 식사 중이던 게들은 놀라 구멍 속으로 재빨리 숨는다. 높이뛰기 대회 참가하려고 열심히 연습 중이던 말뚝망둥이들은 더 멀리 뛰면서 재롱을 부린다.가로림만 뻘밭에는 게집들로 빈자리가 없다. 구멍이 뻥뻥 뚫린 뻘밭은 서울의 아파트 밤 풍경 같아 보인다. 살이 통통히 오른 능쟁이(칠게), 돌쟁이(돌장게), 질퍽한 뻘밭 언덕 위에 황발이(붉은 농게)가 일광욕을 즐기면서 느리게 걷고 있다가, 가끔 큰 발로 남성
긴 장마가 떠날 기미가 안 보이지만 입추가 지났으니 가을은 문 앞에 와 있다.멈출 줄 모르는 장맛비는 해변에 염기를 모두 씻어버렸다. 염기 없는 해변에는 갯질경이들이 예쁜 꽃밭을 만들었다.바닷가로 기울어져 금방 부러질 것 같은 참 나뭇가지 위에 여러 마리의 쓰르라미들이 목청을 돋우며 짝꿍을 부르고 있다. 어두운 땅속에서 7년을 참고 세상 구경나왔으니 예쁜 짝꿍 만나 종족 번식을 하고픈 쓰르라미의 꿈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바닷물이 비운 해변은 쓰르라미들의 합창 소리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뻘 밭에서 쩍쩍 소리를 내며 간주를 넣어주
가로림만 관리 해변을 걸을 때마다 만나는 불그스름한 바위의 형상은 예사롭지 않은 모습으로 보인다. 이른 아침 그리고 오후에 마주칠 때와 썰물 그리고 밀물이었을 때 붉은 바위의 모습은 아주 달라 보였다. 무섭게 쏟아지는 장맛비 속에 지매 섬으로 이어지는 수등 위에서 자라고 있는 염생식물인 갯질경이가 꽃을 피울 것을 상상하며 제방 둑에서 바라만 본다. 언제쯤 두려움이 없이 수등을 여유롭게 걸으며 가로림만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깊은 물 속에 몸을 숨겼다가 물이 빠지면 하루 두 번 물 밖으로 나오는 긴 수등 위에 염생식물들의 생태계는
하늘과 땅이 물기둥으로 연결된 것처럼 가로림만 해변에는 폭우가 쏟아진다. 장대비와 바람이 함께 몰아치자 가로림만 인근 갈두천은 붉은 흙탕물로 넘쳐나고, 흙탕물과 흙 속에 숨어있던 쓰레기는 가로림만 해변까지 순식간에 내려와 해변은 온통 쓰레기들로 가득 찼다.이 와중에 오랜만에 풍부해진 먹잇감으로 갯골에서 성찬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산과 들에서 밀려온 다양한 먹잇감으로 즐겁게 포식하는 왜가리들과 백로들은 환호를 지르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겁 없이 무서운 바다로 달려온 황소개구리 올챙이 한 마리가 겁먹은 눈으로 바위틈
칼슘, 마그네슘, 미네랄이 풍부한 가로림만 바닷물의 결정체인 소금은 달고 맛이 좋은 소금으로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염부 정춘해씨는 소금 농사의 어려움을 전해준다.“내년에도 또 할 수 있을지 몰라요, 어릴 적부터 배운 것이라 지금까지 하고 있지, 이거 힘들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 일 못해요”강열한 햇볕이 좋은 지금은, 일년중 가장 품질 좋은 소금을 수확할 수 있는 시기이다.저수지에 가두었던 바닷물은 강한 햇볕을 받으며 증발지로 흘러간다. 증발지에 도착한 바닷물은 하루 이틀 동안 머물면서 수분이 증발되고 바닷물의 염도는 점